각자의 관점으로 이야기하는 세상
'서울은 이상한 도시'는 서울이라는 도시와 건축을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다루는 콘텐츠를 만듦으로써 '엔터테인먼트로서의 건축 아카이빙'을 시도하고 있는 팀이에요. 저희는 너무 당연하거나 일상적이어서 놓치기 쉬운 부분들을 한 번 더 들여다보고, 거기서 어떤 의미를 도출해보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올림픽 이펙트> 전시는 보는 사람마다 굉장히 다른 것을 읽어내는 전시일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올림픽이 국가적으로 거대한 이벤트이긴 했지만, 국민 개개인의 상황과 욕망은 다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누군가에겐 즐거움이었을 수 있고, 누군가에겐 직업적 성취가 목적이었을 수도 있겠죠. 각자 올림픽과 다 다른 관계를 맺었던 만큼,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도 다 각자의 관점에서 전시를 관람했을 것 같아요.
서울 올림픽 당시 다양한 분야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전문가의 이야기를 도트 그래픽을 활용한 웹툰으로 만든 선우훈 작가의 작업. 해당 작업은 VR 상에서 링크로도 확인할 수 있다. (전시 VR 이미지 캡처)
전시에 보면 선우훈 작가님의 작업이 그 시대의 이야기를 아주 개인적인 스케일의 이야기로 담아낸 거거든요. 올림픽 당시에 새로운 작업이나 시스템을 만들어 낸 이들의 이야기가 한 개인의 목소리로 담담하게 그려져 있는데, 저는 기본적으로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많이 고민하는 편이다 보니, 그게 굉장히 감동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저는 평소에도 많은 사람이 자기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어요. 우리가 어떤 결과물을 볼 때, 보통 그것을 만들어내는 회사나 단체의 대표 격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로 듣게 되잖아요. 근데 사실 제가 궁금한 것은 그것을 실질적으로 만드는 실무자들의 이야기이고, 그런 이야기를 듣는 걸 굉장히 즐거워하거든요. 그래서 저부터 나만의 재미있는 작업을 조금 하는 사람으로서 개인적 의견을 잘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제가 진행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인 '서울은 이상한 도시'도 그 일환이라 생각하고, 이번 전시 코멘터리도 그런 차원에서 재미있는 기획이라 생각이 들어서 고민 안 하고 바로 하겠다고 했던 거고요. 이번 전시에도 올림픽의 시대에 실무를 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큰 울림을 줬듯이, 개인의 경험과 감상을 많은 이들과 공유하는 과정 자체가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기술의 성장과 제도의 제약
인터뷰에 이어서 바로 '디자이너의 사물함'이라는 코너에서 당시 만들어진 작업물이나 건축가 김태수의 노트 같은 실물을 만나게 되었는데, 거기서 노트에 적힌 당시 고민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 노트에는 '한국에서 건축을 만드는 프로세스가 너무 급박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데, 그 과정에서 건축을 이해하는 건축가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은 극도로 미비한 상황인 것이 너무 개탄스럽다'라는 이야기가 굉장히 울분을 토해내듯 적혀 있었어요. 그건 전시를 보러 갔을 당시에 제가 갖고 있던 생각이랑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거예요. 거의 제가 지금 썼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그런 내용이었어요.
기술의 발전은 올림픽 이후로도 계속 급격히 진행되었어요. 올림픽 시대에 도입된 컴퓨터로 도면을 만드는 작업 방식은 계속해서 발전해서 몇 년 전만 해도 고화질로 렌더링 하나 걸려고 하면 10시간, 20시간 걸리던 것이 지금은 게임에서 사용하는 리얼타임 엔진을 사용해서 바로바로 렌더링을 확인할 수 있거든요. 아마 더 이상의 비효율은 없지 않겠냐고 생각할 만큼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기술적인 측면은 발전한 상황이에요. 하지만 역시나 문제는 항상 제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올림픽 시대에 엄청난 기술적인 발전이 이루어졌지만, 제도적인 면의 발전은 기술과 불일치한 것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걸 보니, 아마도 이 혼란이 계속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고, 들떴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더라고요.
이윤석 님이 인상 깊게 보았던 그 시절 건축가들의 노트 (전시 VR 이미지 캡처)
1988년 당시의 이윤석
저는 1990년생이어서 올림픽이 열릴 땐 태어나지도 않았어요. 올림픽의 열기를 실제로 경험한 세대는 아닌 거죠. 근데 제가 대전에서 나고 자라서, 93년도에 열린 대전 엑스포가 저에게 미친 영향이 올림픽이랑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한번은 부모님이랑 밤에 엑스포 전시장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 한빛탑에서 정말 강하고 푸른 빛이 뿜어져 나와서 전시장 전체가 푸르게 빛나고 있던 기억이 있어요. 어쩌면 거기서 제가 '미래'의 이미지를 배운 건 아닐까 생각이 들거든요. 그 당시 대전에 살던 학생들은 미술 시간에 미래 도시를 그리라고 하면 무조건 한빛탑을 그렸었던 기억이 있을 거예요. 어쩌면 올림픽을 직접 겪은 분들은 제가 93년도 대전 엑스포에서 느낀 그런 감각과 비슷한 것을 공유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잠실에서 만난 올림픽
올림픽이라는 것의 실체를 느꼈던 것은 제가 대학 진학 때문에 서울로 올라오고 난 후였어요. 2008년에 잠실 주경기장에서 '서울 디자인 올림픽'이 열려서 갔었어요. 종합운동장역에 내려서 잠실 주경기장을 처음으로 보고 거기로 향해 걸어가서 건물 안으로 딱 진입했는데, 그 구조물이 너무나 거대한 거예요. 정말 굉장한 스케일감에 놀랐던 경험이 있어요. 그게 제가 처음으로 올림픽을 직접 마주한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유학 마치고 다시 서울로 와서 일을 시작했을 때 잠실에서 3년 넘게 살아서 그 일대를 구경하고 다녔어요. 그러다가 올림픽 프라자 상가 건물을 마주쳤는데, 그 건물 모양이 저에게는 너무 충격으로 다가왔었어요. 건물 안에 들어가서 건물 정보를 찾아봤는데 많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 이 건물을 한번 기록해봐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가 '서울은 이상한 도시' 콘텐츠를 찍게 됐어요.
재미있는 사실은 상가 맨 위층이 유리 아케이드로 만들어져서 88올림픽 당시에는 가장 럭셔리했던 공간으로 사용된 것 같은데, 지금은 상가에서 일하시는 상인들이나 청소 노동자분들이 휴식하는 공간, 아니면 창고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어요. 시대에 따라 공간 활용이 다르게 쓰이는 걸 흥미롭게 생각하며 그 공간을 촬영했었어요. 그렇게 개인적으로 탐구해봤던 건물에 관한 기록을 전시회 한쪽에서 만난 게 반갑더라고요.
올림픽 당시에 건설된 올림픽공원부터 아파트와 상가까지, 이 모든 게 굉장히 대규모의 개발이고 굉장히 상징적이고 면밀하게 디자인된 시설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국가적 이벤트를 대비해서 국가가 나서서 개발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모든 자원이 총동원되는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만들어지기 힘든 환경이겠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었어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위해 건설된 올림픽 선수촌 기자촌 아파트와 단지 내의 올림픽 프라자 상가 그리고 올림픽 공원의 도면도 확인할 수 있다. (전시 VR 이미지 캡처)
서울에서 올림픽 찾기
이번 <올림픽 이펙트> 전시의 연계 프로그램으로 5명의 도시 기록자가 함께 '서울 스테이지'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했었어요. 저도 그중 한 명이었고요. 전시장 바깥의 조금 더 넓은 범위에서 올림픽의 여파를 찾아보자는 취지에서 진행한 프로그램이었어요. 뭔가 정해진 주제에 따라 서울을 다시 살펴보니 도시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조금 다른 레벨에서 도시를 봐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전시장 안에 계단을 만든 거였는데, 실제론 아무도 안 올라가시더라고요. (웃음) 올라가셔서 보셔도 되는 건데, 다들 전시물인 줄 아시고...
그런데 처음에는 현재의 도시 환경에서 올림픽의 여파를 취재하고 수집하는 데 집중했었지만, 갈수록 점점 더 옛날 자료를 찾게 되더라고요. 올림픽의 여파를 일상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물리적인 환경이 생각보다 많지 않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쩌면 저처럼 그 시절을 직접 겪지 않은 사람은 몰라서 못 찾는 걸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이 도시가 너무 빨리 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서울 스테이지>를 소개하는 공간에는 조금 다른 레벨에서 전시를 살펴볼 수 있도록 거대한 계단을 설치해 두었다. 이 계단은 직접 올라가서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것으로, VR에서도 계단에서 보이는 뷰를 담아두었다. (전시 VR 이미지 캡처)
전시를 다르게, 다시 보는 경험
<올림픽 이펙트> 전시는 여러모로 저에게 의미 있는 전시로 기억될 것 같은데요. 그동안 좋았던 전시는 계속 들춰보며 상기하고 싶어서 항상 도록을 구매했었어요. 근데 사실 전시는 전시되는 콘텐츠만이 전부가 아니고, 학예사님들이 전시를 준비하며 고민한 공간의 레이아웃이나 그래픽 같은 게 다 전시를 구성하는 거로 생각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전시 도록만으로는 전시를 보관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생각을 항상 했었고, 그런 부분이 늘 갈급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에 VR을 통해서 전시를 다시 살펴보니 공간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었는지, 그 구성이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다각도로 찬찬히 살펴볼 수 있는 게 좋았어요. 그리고 보통 건축에서는 아이소메트릭이나 조감도처럼 공간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시선으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VR에서는 줌-인 줌-아웃 하면서 그런 시선으로 전시 공간을 다시 볼 수 있는 게 건축을 하는 저로서는 정말 흥미로웠어요. 어떻게 보면, 전시 공간도 콘텐츠화된다고나 할까요?
사실 VR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항상 의문을 가졌었는데, VR을 통해 전시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레이어가 생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굉장히 재미있는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VR이 생각보다 너무 부드럽고 사실적으로 구현된 것도 인상 깊었고요.
마치 건축가가 된 것처럼 평면도와 아이소메트릭으로 전시관을 돌려볼 수 있는 것은 VR 전시관의 또 다른 매력이다. (전시 VR 이미지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