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그 시절의 정다은
저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서울 도시건축아카이브센터의 정다은입니다. 1988년에 저는 중학교 1학년이었어요. 그땐 세계적인 행사가 동네에서 열린다고 해서 다들 구경하러 가고, 소풍도 다 올림픽공원으로 갔거든요. 저는 올림픽을 정말 가깝게 느꼈던 세대였죠.
운 좋게 88올림픽 개막식도 보러 갔었어요. 그때 기념품을 정말 많이 받았는데, 벌써 30년쯤 지나서 거의 다 없어졌지만, 그래도 이렇게 배지는 그대로 달아뒀어요. 이거 하나로도 참 여러 기억이 떠오르거든요. 그때 올림픽 보러 잠실 주경기장에 갔었지, 대학생 때는 거기서 마이클 잭슨 공연이랑 연고전도 봤었지 같은 것들이요. 그리고 잠실 주경기장에 회랑으로 다 연결된 부분을 젤 좋아하는데, 최근에 전국체전 보러 갔을 때 저희 딸이 거길 계속 뛰어다녔던 것도 떠오르네요. 참 많은 기억이 겹쳐있네요.
정다은 님이 보관해온 88올림픽 기념 배지들
80년대 초반에는 이촌동에 살았는데, 그때만 해도 한강 주변이 다 모래밭이었어요. 그래서 강변북로를 무단횡단해서 그 모래밭에 가서 놀곤 했어요. (웃음) 어느 순간부터 도로가 확장되면서 그렇게 갈 순 없게 됐죠. 한강 공원도 80년대에 단장한 도시 시설 중 하나거든요. 한강 종합개발에 관한 서울시 자료집을 보면 처음 만들어진 한강 공원의 모습이 담겨있어요. 이젠 너무 익숙해서 그냥 당연하게 지나치는 공간들도 처음엔 세밀하게 설계해서 만들어진 시설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죠. 요즘 한강에 가보면 그때 심은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서 땅의 일부가 된 느낌이 들고 되게 좋아요. 그러고 보면 도시 시설물들은 한번 만들어지면 정말 오랜 시간을 견뎌내는 것 같아요.
88올림픽 전후로 만들어진 한강 공원과 지하철 등의 도시 시설을 담은 사진작가 최용준의 작품 (전시장 VR 이미지 캡처)
서울의 새로운 도시 체계
올림픽은 정말 많은 사람이 모이는 세계적인 행사였던 만큼, 준비에도 수년이 걸렸고, 그 과정이 대도시로 변화하는 인증 단계를 여러 차례 거치는 것 같았어요. 올림픽을 치를 거대한 스타디움 건축도 만들고, 방송을 국제적으로 송출할 시스템도 갖추게 된 계기였고요. 올림픽 때문에 세계에서 몰려드는 수많은 사람이 탈 없이 식사하려면 위생수칙 체계도 잡아야 했고, 화장실도 개선하고,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 시설도 늘어나고, 표지판도 표준화되고요. 그런 모든 것들의 체계를 잡아나간 계기가 바로 올림픽이었고, 그 과정에서 건축이랑 디자인 분야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시기 같아요.
전시장 입구에 딱 들어서면 유리에 그려진 일련의 과정도 너머로 저 멀리에 강변북로에 있는 올림픽 로고가 보여요. 늘 그냥 지나치는 도시의 인프라에 새겨진 올림픽 로고가 그렇게 메인 입구에서 한눈에 보이는 거죠. 저는 그게 올림픽 이펙트의 다층적 의미를 총체적으로 함축 시켜 놓은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장면이 진짜 마음에 들었어요.
<올림픽 이펙트> 전시장의 메인 입구에서 바라본 뷰. 이 장면에서 겹쳐 보이는 전시물들이 그 자체로 올림픽에 의해 추진된 다층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것 같다고 평하였다. (전시장 VR 이미지 캡처)
대형 빌딩과 아케이드의 시대
시청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이 주변도 올림픽 때 많이 바뀌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어요. 올림픽을 추진하면서 여러 규제가 생기고 도시의 모습이 많이 바뀌었던 거죠. 서울도서관에서 서울시의 옛 자료들을 인터넷으로도 열람할 수 있는데, 각 구에서 만든 '올림픽 준비현황' 같은 자료도 볼 수 있어요. 보통 신축이 아니고서는 기록이 잘 남아있지 않는데 지하철 공사 사진, 건물 리모델링 공사 사진들도 제법 많이 남아있어요. 그리고 일상적으로 보이는 레벨에서만 바꾼 게 아니라, 호텔에서 내려다보이는 노후한 저층 건물 지붕도 고치고, 참 다각도로 어떻게 보일지 신경을 많이 썼더라고요.
'서울과학사'에 의해 만들어진 3D 프린팅 모델. 도시 환경을 변화시킨 시설물 모형, 빌딩 모형 등을 살펴볼 수 있다. 한때 삼일고가에 의해 가려져 있던 장교빌딩의 파사드 전면의 디테일을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전시장 VR 이미지 캡처)
그 시점에 을지로2가 재개발도 이루어지면서 삼일고가도로 주변으로 고층 빌딩들이 생겼어요. 그중 하나가 '장교빌딩'인데, 삼일고가도로에 가려져서 한동안 건물의 정면을 볼 수 없었어요. 대한주택공사에서 만든 '을지로 2가 재개발지구 사업지'를 보면 이 건물의 저층부가 백화점으로 정해진 것도 올림픽의 영향이 컸더라고요. 멀지 않은 곳에 명동 롯데백화점, 미도파백화점, 지하철 2호선이 있으니 상권이 이어질 거로 생각해서 백화점으로 정했던 거죠. 하지만 실상은 그리되지 못해서 지금은 다 오피스로 사용되고 있어요. 다행히 지하 식당가에 아름다운 아트리움이 백화점으로 만들어졌던 흔적으로 변하지 않고 남아 있죠.
그런 아트리움은 그 시대의 비슷한 건축 언어이자 '엑기스'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어요. 건물 여러 동을 연결하는 지하 광장에 셸 구조로 된 원형 돔이 있는 그런 아트리움이요. 그런 아트리움은 여의도 트윈타워나 삼성동 무역센터에도 있었어요. 많은 사람이 모이는 대공간이 필요하다는 시대적 요구 같은 게 있었기에 만들어질 수 있었던 공간인 것 같아요.
서울을 담는 아키비스트의 고민
도시와 건축을 아카이빙하는 게 제 일이다 보니 어떤 자료를 수집할 것인가에 관해 늘 고민이 많았거든요. 서울시의 다른 기관들과도 구별되면서 수집해 둘 필요와 가치가 있는 그런 자료가 무엇일지 늘 고민하고 있어요. 그런 자료를 소유하신 분들을 설득할 방법부터 수집된 자료를 시민들이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안까지 다 고민이죠. 그런 고민을 안고 <올림픽 이펙트> 전시를 보러 갔어요. 수집된 자료가 다양하게 활용되는 것을 보며 그동안의 고민을 다각도로 정리해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보통 아카이브 전은 과거의 자료를 나열해서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올림픽 이펙트> 전시는 과거의 기억과 물건들이 현재의 시점으로 재해석되고 새로 만들어진 작업도 있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전시장 곳곳에서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깊이 고민하고 만든 전시라는 게 느껴졌어요. 전시장에 서 있는 거대한 건축 사진 이면에 그것을 지탱하는 삼각형의 구조물이 그대로 드러나고, 거기에 그 장면을 가능하게 했던 보고서 같은 것들이 전시되도록 설치한 것이 좋았어요.
올림픽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와 그 이면의 노력과 과정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올림픽 이펙트>의 전시 공간이 구성되었다. (전시장 VR 이미지 캡처)
맥락의 연결과 확장, 전시를 담는 VR의 역할
자료는 그것이 만들어진 맥락과 연관 자료들이 연결될 때 더 큰 가치와 활용도를 가질 수 있는데, 자료를 저장하거나 전시를 꾸릴 때에는 그런 맥락에 따라 공간에 배치해두기 마련이잖아요. 거기서 우리는 공간을 오가며 몸으로 그 맥락을 이해하고 기억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맥락을 그대로 충실히 옮겨둘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VR은 전시를 기록해두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클릭하며 더 많은 자료로 연결될 수 있다면, 화면에 보이는 것 그 이면의 다른 지점으로 어디론가 더 들어가게 해주는 플랫폼이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