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웅
1976년생
디자이너, 디자인 스튜디오 프로파간다 대표
최지웅
1976년생
디자이너, 디자인 스튜디오 프로파간다 대표
<올림픽 이펙트>는 숨은 노력을 담은
엔딩크레딧 같은 전시

1988년 그 시절의 최지웅

저는 '88서울'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한, 서울올림픽 마니아이자 수집가이자 애호가인 최지웅이라고 합니다. 서울올림픽은 제가 국민학교 6학년 때 열렸어요. 그때부터 올림픽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어요.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서울올림픽에 관한 걸 모으기 시작했어요. 그때는 그게 왜 그렇게 좋았는지도 잘 몰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스포츠 경기나 축제의 즐거움 같은 게 좋았다기보다는 그 올림픽이라는 이벤트를 둘러싼 여러 가지에 빠졌던 것 같아요.

지금 디자이너가 되어서 생각해보니 마스코트부터 휘장, 포스터, 우표 같은 시각디자인도 있고, 성화대나 메달 같은 건 산업 디자인이고, 자원봉사자나 심판 유니폼 같은 부분은 의상 디자인, 경기장 주변에는 환경 디자인이 적용된 거죠. 올림픽 이전에는 보지 못한 것들이 그렇게 한꺼번에 쏟아져서 정말 신기했었어요. 정말 신나게 새로운 것들을 흡수했었던 것 같아요.

특히 호돌이가 왜 그렇게 좋았는지 모르겠는데 정말 사랑스러운 느낌이 들어서 너무 갖고 싶었어요. 그래서 초등학생이 모을 수 있는 건 다 모았어요. 그때는 용돈도 많이 없으니까 작은 우표나 신문에 호돌이가 나온 광고도 잘라 오려서 모으고 그랬어요. 그리고 그때는 '서울올림픽 공식' 제품이 많았어요. 그런 거에 호돌이가 다 붙어 있었거든요. 그래서 빵도 사고 음료수도 사고 그랬어요. TV만 틀면 다 서울올림픽이었죠. 그때는 나라 전체가 올림픽에 미쳐 있던, 무슨 집단 환각에 빠진 상태였던 거 같아요. 6학년 꼬마였던 저도 그 환각에 같이 빠졌던 것 같아요.

최지웅 님의 작업실에서 그가 어린 시절부터 모았던 서울올림픽 기념품과 직접 만든 책 '88 서울' 등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이건 제가 직접 만든 올림픽 스크랩북이에요. 개막식 때 선수단 입장할 때 들고 있는 피켓 디자인에 올림픽 디자인 서체를 따라 그려서 표지를 만들었고요. 마스코트도 그리고. 재미있는 건 이 스크랩북을 만들려고 제가 아이디어 스케치를 했던 것도 있더라고요. 표지를 어떻게 만들지, 각 부분을 어떻게 디자인할 건지 같은. 지금 책을 만들 때 하는 페이지네이션을 그때 벌써 한 거죠! 그게 여기 같이 들어 있어서 저도 놀랐어요. 뭔가를 그리고 만드는 건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있었는데, 이 스크랩북을 만들면서 제가 이런데 관심이 있고 재능도 있다는 걸 알게 된 것 같아요. 이런 작업이 진짜 재미있고 신나게 빠져들어 할 수 있단 걸 알게 된 거죠.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 저의 개인적인 올림픽 이펙트겠네요.

어린 시절에 직접 만든 스크랩북을 펴 보여주는 최지웅 님. 올림픽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수집하기 위해 친구네 집에서 보던 다른 신문도 받아서 스크랩 작업을 하였다고 한다.

30년을 이어온 서울올림픽 사랑

그리고 몇 년 전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모았던 것을 다 모아서 책으로 엮어냈어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공감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모았던 호돌이 인형이나, 제 고향 원주에서 성화봉송 오던 날에 길거리에서 나눠줬던 응원 깃발처럼 제가 아끼고 좋아하는 것들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다른 사람들의 추억과 이야기도 담았어요.

그리고 서울올림픽이 열린 지 정확히 30년 후에 평창 올림픽이 열렸잖아요. 제 고향이 강원도이다 보니까 더 몰입되었던 거 같아요. 무분별한 개발이 일어나는 부정적인 영향도 한편 있었겠지만, 서울올림픽 30년 후에 다시 열린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고 그래서 기대가 더 컸어요. 그리고 그때 제가 직접 성화봉송을 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어서 굉장히 행복했어요. 제 꿈을 이루는 기분이었어요. 영화 포스터 디자이너가 되는 것도 제 꿈이긴 했는데, 그것보다 더 기뻤던 거 같아요. (웃음)

2008년 평창 올림픽에서 최지웅 님이 직접 성화 봉송 주자로 참가했을 때 들고 뛰었던 성화를 보여주며 환하게 웃고 있다.

서울올림픽의 '비하인드 스토리'

<올림픽 이펙트> 전시는 그냥 서울올림픽을 회고하는 전시인 줄 알았는데, 가서 보니까 '올림픽 이펙트'라는 전시 타이틀 그대로 서울올림픽이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 보여주는 전시였더라고요. 그러니까 영화로 치자면 메이킹 필름이나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걸 보여주는 전시였던 거예요. 그래서 기대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도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고, 기존에 알던 것들도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소개해주는 것 같아서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제가 강변북로에 있는 이 로고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게 도로 옆에 있다 보니 사진 찍기가 정말 힘들거든요. 저는 이거 찍으려고 차 타고 몇십번 왔다 갔다 하면서 찍었거든요. 그런데 이걸 이번 전시 메인 포스터에 사용한 걸 보고 굉장히 반가웠고, 뭔가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이 전시가 누구나 알지만,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걸 심도 있게 아카이빙해놓았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인 것 같아요.

<올림픽 이펙트> 전시의 메인 포스터에도 사용된 강변북로의 올림픽 마크를 찍기 위해 여러 차례 반복해서 그곳을 지나갔고, 결국 자신의 책에도 담을 수 있었다고 한다.

서울올림픽이 세계에 건낸 첫인사

전시장에 딱 들어서면 젤 처음 보이는 게 서울올림픽 앰블럼과 마스코트잖아요. 이 모든 것을 대표하는 상징. 이걸 볼 때부터 굉장히 설렜어요. '이제 올림픽 여행을 떠나는구나!' 하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거기서 호돌이나 픽토그램 같은 그래픽 디자인에 관한 매뉴얼도 실물로는 처음 봤고요. 책에서만 보던 주 경기장 모형도 실물로 처음 보게 되었어요. 어린 시절에 미니어처 모형 같은 거 좋아했는데, 그때로 돌아간 느낌이었어요.

올림픽의 상징물과 개막식이 소개된 첫 번째 전시관 모습 (전시 VR 이미지 캡처)

그리고 안쪽으로 들어가 보면 '이만익 아카이브'가 있는데, 거기서 개막식 때 전광판에서 보여줬던 이미지의 실사가 있는 거예요. 이 이미지가 개막식 프로그램 북에 있어서 봤었던 건데, 전광판을 찍은 사진이어서 픽셀이 다 깨져 보이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 실사 이미지를 판화로 만든 작품이 전시에 있어서 굉장히 놀랐어요. 책에서 아주 작게만 보던 것을 큰 사이즈의 실물로 볼 수 있어서 너무 기뻤고, 또 이것을 미술관에서 소장해서 갖고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어요. 해외보다 우리나라가 아카이빙이 약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런 것이 잘 아카이빙된 것을 보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굴렁쇠 소년의 유니폼도 이 행사를 위해 디자인했다는 것 처음 알게 됐고, 개막식 공연 출연자들의 의상 스케치도 굉장히 흥미롭게 봤어요. 개막식 때 뭐 하나 있는 걸 그대로 쓴 게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성화대 위에 '세계수'라고 태양과 구름을 상징하는 그런 조형물이 있었는데, 그게 나중에 하늘로 올라가면서 성화대가 짠! 하고 나타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불을 붙였었거든요. 그건 어렸을 때 봤을 때도 충격이 컸었어요. 그 성화대 미니어처가 또 여기 있어서 보고 참 신기했어요.

서울 올림픽 개막식의 전광판에 사용된 상징적인 이미지의 원도도 확인할 수 있다. (전시 VR 이미지 캡처)

서울올림픽을 만든 사람들의 엔딩크레딧

다음 공간에서 KBS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근무하셨던 조현주 님 인터뷰가 있는데 그 당시만 해도 TV를 보면 손으로 쓴 아날로그 느낌의 자막이 많았어요. 근데 서울올림픽 때 3D로 구현된 자막이 등장하기 시작한 거예요. 3D라는 말도 그때는 몰랐죠. 금색의 입체 앰블럼이 딱 떠 있는데 그거 보고 굉장히 놀랐었거든요. 조현주 님 인터뷰를 보니까 당시에 그런 방송 그래픽 기술을 처음 도입한 거였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해외의 도움도 많이 받았고, 우리나라 방송 그래픽의 발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하더라고요.

서울 올림픽 당시 다양한 분야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전문가의 인터뷰를 살펴볼 수 있다. 해당 인터뷰는 VR에서 링크로도 확인할 수 있다. (전시 VR 이미지 캡처)

저는 직업이 디자이너라서 그런진 몰라도 책을 사거나 음반을 사면 항상 맨 뒤에 판권부터 살펴보는 편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누가 디자인을 했고 어떤 사람들이 참여했는지를 늘 호기심 많게 봐왔어요. '도대체 이건 어떤 분들이 만들었을까?' 싶은 거죠. 그런데 이번 전시를 통해서 늘 궁금했던 사실들을 30년이 훌쩍 지나 알게 된 것들이 있었어요.

이런 것들이 영화에서 보면 '엔딩 크레딧' 같은 거 아닐까 싶어요. 영화에서도 크레딧이 되게 중요한 부분이거든요. 그냥 이름이 쭉 나열되는 것 이상으로 이 영화에 참여한 이들의 노고에 대한 감사와 존중을 표하는 거라고 할까요? 이번 전시가 그런 것 같았어요.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숨은 노고를 보여주는 엔딩 크레딧 같았어요.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영화 필름 수집도 하면서 크레딧도 체계화해서 다 데이터베이스화를 해두거든요. 이번 전시를 통해서 그런 정보들을 모으고 정리했다는 것에서도 큰 의의가 있는 것 같아요. 그것 자체가 또 하나의 이펙트에 대한 기록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오리지널리티의 시대

전시 마지막 코너에 가면, 그래픽 디자이너라면 존경하는 디자이너 김진평 선생님의 타이포그래피의 원도를 볼 수 있어요. 그땐 컴퓨터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잖아요. 그때는 일일이 로트링 펜으로 그리고 칠하고 수정하고 필름까지 떠서 만들었는데, 그런 실물들을 볼 수 있더라고요. 아날로그 시대에 아무것도 없던 상황에서 그동안 없던 것들을 새로 만들어 내는 개척자 같은 분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어요.

지금은 사진만 하더라도 직접 찍지 않고 돈 주고 살 수 있는 스톡 사진 사이트가 있잖아요. 폰트도 만들어져있는 걸 손쉽게 쓸 수 있고요. 근데 이 시대는 본인이 직접 스스로 다 만들어내던 시대여서 오리지널리티의 시대라고 할 수 있어요. 작업 하나하나에 장인정신 같은 걸 느낄 수 있죠. 그래서 그 시대의 작업물들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런 게 지금까지 계속되어도 좋을 거로 생각해요. 오늘날의 건축가나 디자이너들도 그런 마인드로 작업을 하면 더 풍부한 시각적 유산이 남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영화 로고 타이틀을 디자인할 때 있는 폰트를 그대로 쓰지 않고, 그 영화만을 위한 서체를 개발하거든요. 물론 지금은 컴퓨터가 있으니까 로트링 펜은 쓰지 않고 연필로 스케치하는 정도고, 그걸 스캔 받아서 일러스트레이터에서 벡터화시켜서 작업하는 편이에요.

김진평 디자이너가 사용한 도구와 작품 원도를 확인할 수 있는 코너, 그의 저서인 '한글의 글자표현'도 한쪽에 놓여있다. (전시 VR 이미지 캡처)

VR로 하는 프라이빗 전시 관람 체험

VIP로 초대돼서 프라이빗 전시 관람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요. 실제로는 전시장에 저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영상 같은 것도 전시장에서는 한두 개만 끝까지 보고 넘어갔고, 어떤 코너에서는 다른 사람한테 가려져서 못 보고 지나쳐갔던 것들도 있고요. 전시장에 그려진 도표 같은 거는 큰 스케일감만 느꼈지 사실 세세하게 읽어보진 못했어요. 그런데 VR에서는 이렇게 다시 하나하나 세세하게 볼 수 있으니까 좋더라고요. 하나 아쉬운 건 전시물 하나하나도 연결되어서 좀 더 자세한 정보도 더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는 근대 유물이나 오래된 진품 같은 걸 정말 좋아하거든요. 그런 걸 아카이브 해놓은 전시는 전시를 보여주는 방식이나 전시 디자인 자체도 볼거리 중 하나라서 도록에서 전시된 아이템만 설명하는 것보다는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VR로 전시장 자체를 아카이빙해놓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그런 거 좀 있었거든요. 지방 사는 서러움. 서울의 문화 같은 걸 못 누리고 사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요. 지방에 살아서 과천까지 보러 오지 못한 사람도 많을 거 아니에요. 그런 분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래도 이게 실제로 보는 감동의 100분의 1도 못 따라가기는 하죠. (웃음) 그래도 VR로 보면 그것을 실물로 또 보러 가고 싶은 느낌도 있어요.

최지웅 님이 지난번 전시 관람에서 미처 다 보지 못했던 거대한 월 이미지의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고 있다.

VR 전시 같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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